심화글쓰기 중간고사를 계기로 감정해부 ep 1.와 오랜 생각을 재료로 회고록을 써봤습니다. 정리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네요. 아, 글은 생각이 정리되면 계속 업데이트 됩니다. + 글에 대한 피드백과 감상은 언제나 환영 :D - 글쓴이
초등학교 6학년 때 어머니의 도움 없이 100점을 맞았던 국사 시험. 그것이 내가 미미하게 기억하는 승리의 기억이다. 나는 쏟았던 노력이 하나로 합쳐져 보상처럼 다가오는 그 느낌을 좋아했다. 인생에 있어 쉽게 잊히는 사소한 승리의 기억만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 학창 시절에는 경쟁으로 얼룩진,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순간들이 있다. 난 중학교 때 남들과 비교하면 성장이 빠른 아이였다. 출석번호 뒷자리를 늘 가지고 있던 나에게, 친구들이 물었다. "너 키 진짜 크다. 나 몇 센티미터만 주면 안 돼?" 의도가 어쨌든 간에 난 그 질문에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그들의 질문이 마치 장난을 핑계로 한 시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대충 얼버무려 넘어간 대답 끝에 남은 감정은 일종의 씁쓸함뿐이었다. "내가 키가 평범했다면 나한테 저런 장난을 쳤을까." 언젠가는 반에 있던 친구가 나에게 수학 문제를 가져와서 물어보았다. "이거 어떻게 푸는지 알아?" 친구가 어디서 틀렸는지까지 알려주고 싶었다. "여기서 계산 실수한 것 같아". 내 예상과는 달리 낯빛이 어두워진 친구의 표정이 충격적이었다. 한동안은 그때 왜 기분이 나빠 보였는지를 물어보고 싶었다. 내 생각의 틀에 경쟁은 꽤 많은 영향을 주었다.
앞서 불편한 상황들이 있었지만, 경쟁 자체가 싫지는 않았다. 무언가에 노력해서 정당한 보상을 받는 과정이 좋았고, 계단을 밟고 위로 올라가는 듯한 느낌이 좋았다. 하지만 경쟁에 몰두하면서 모든 것을 내던지고 싶지는 않았다. 경쟁으로 인해서 서로 마음 상하는 일이 없었으면 했다. 난 고등학교 입시를 위해 학원에 다녔고 그 학원에 있던 친구들과 어울렸다. 친구들과는 즐거웠지만, 학원은 당시 고등학교 입시 반이었고 우리는 암묵적인 경쟁 상대였다. 여러 학원의 반을 다녔었는데, 어느 반에서는 선생님이 날 이름이 아닌 등수로 불렀다. "야 2등!" 어느 반에서는 친구들끼리 시험 성적으로 장난과 공격 사이의 무언가가 계속되었다. "아~ 이번 시험 쉽던데, 넌 잘 봤냐?" 어느 반에서는 시험 성적을 받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울음을 터트리는 친구를 볼 수 있었다. 나는 당혹스러웠다. 저렇게까지 마음을 다쳐가며 경쟁을 하고 싶을까 궁금했다. 더 좋은 방법은 없었을까? 의문을 가졌음에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떤 답을 해야 할지도 몰랐고, 내가 원하는 고등학교를 가야 했기 때문이다. 원하는 고등학교에 가지 못하면 가치 없는 사람이 될 것 같았다. 고등학교에서는 경쟁의 난이도가 올라가 성적은 곤두박질쳤다. 밑바닥에서 다른 높은 점수의 친구들을 시기했고 한편으론 부러워했다. 한국에서 좋은 축에 속하는 고등학교여서 양질의 교육과 지원을 받았지만 준비가 안됐던 나에겐 그저 피곤한 경쟁일 뿐이었다. 그렇게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틀은 딱딱하게 굳어져 갔다. 우연히 미국으로 여행을 가기 까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며칠간 미국의 동부지역 학교들을 구경할 기회가 있었다. 난 프린스턴, MIT, 하버드를 구경하며 보낸 며칠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고풍스러운 분위기들의 건물, MIT 지붕 위에 경찰차가 올라간 적이 있다는 이야기, 잔디에 앉아 자유롭게 공부하던 학생들… 한 번도 본 적 없던 풍경들이 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이 자유로운 분위기에 함께하고 싶었다. 미국에서 공부하기가 내 1번 버킷리스트가 된 순간이었다. 강렬한 목표를 가지니 경쟁의 적당선에 관한 의문들은 잡음처럼 느껴졌다. "난 이 잡음에 신경 쓸 이유도 필요도 없다." 더 큰 목표는 사소한 것들을 잊게 만든다. 그렇게 난 경쟁의 잡음을 지우기 위해 강렬한 목표들을 만들어냈다. 스타트업 인턴 해보기, 제빵 해서 주변 사람들한테 선물하기 등 내 개인적인 버킷 리스트들을 만들어 나갔다.
고등학교 때는 입시가 다가와서 어쩔 수 없이 집중하느라 경쟁의 잡음이 덜 들린 줄 알았다. 대학교에 와서야 경쟁의 틀에 갇히지 않기 위해 다른 틀을 만들어냈음을 깨달았다. "경쟁은 힘들다. 그러니 삶에서 커다란 꿈을 가져서 경쟁에 덜 집중하자."가 고등학교까지 경쟁에 대한 내 태도였다. 하지만 언제까지 경쟁을 덮어두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되도록 경쟁을 피하니 성장의 기회는 적어졌고 뒤로 물러나기를 반복했다. 내가 원하는 단계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경쟁에서 이겼기 때문이었다. 경쟁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수많은 내신과 입학 전형이 날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에 했던 생각들을 지금 되짚어 보아도 부족한 점이 많았다. 고등학교 때 경쟁을 피했던 것이 정말 나에게 좋았던 길일까? 아프다는 핑계로 경쟁을 회피하고자 했던 것이 상대와 나를 존중하지 못하는 길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건강한 경쟁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을 찾으려 했으나, 결국 찾지 못한 채 대학교에 오게 됐다.
대학교에 와서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경쟁과 나 자신이 동등해지는 것이었다. 난 경쟁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여전히 남이 잘되는 모습을 시기했고 그걸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그러다, 대학생 새내기 OT에 갔고 선배들을 만났다. 선배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무언가를 물어보면 친절히 답해주었다. 참고할만한 자료, 할만한 외부 활동들, 자신은 뭘 잘했고 못 했는지를 알려주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난 그저 후배일 뿐인데? 나아가 사회에서 경쟁상대가 될 수 있었는데 왜 도와주는 거지? "선배 그때 왜 이렇게 잘 해주셨어요?" 내가 던진 물음에 대한 답은 다양했다. "네가 잘되면 나도 잘되니깐" "나중에 같이 일하면 재밌을 것 같아서"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이었다. 후에 나는 이 대답을 큰 문제를 풀기 위한 협력의 관계로 해석했다. 협력이라는 관계를 마주보고 나서는, 무언가를 같이 해보려 노력했다. 전공과목의 정리본을 카톡에 뿌린다던지, 동아리 회장을 해본다던지, 창업의 구성원이 되어본다던지... 등등 여러가지 프로젝트들을 해봤다. 프로젝트에서 형성된 관계는 단순히 경쟁으로만 해석할 수 없었다. 연인, 친구, 동기, 선후배, 동아리 부원, 직장 동료 등등… 난 평생 바라봤던 경쟁이라는 틀을 바꾸어야 했다. 평생을 바라봤던 틀이 바뀔 때 난 벌거벗은 기분이었다. 커뮤니케이션하는 법, 피드백하는 법 등 내용은 쉽지만 실천하기 어색한 게 많았다. 참고로 난 지금도 커뮤니케이션을 잘 못 하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경쟁을 드디어 동등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는 중이기도 하다. 대학교에서의 경험은 나에게 세상에는 협력, 공생처럼 경쟁 외에 다양하고 복잡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각자의 목표를 추구하면서도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 방법이 있었다. 경쟁이 관계의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된 순간, 난 경쟁을 드디어 나 자신과 동일선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아직 건강한 경쟁에 관한 생각은 아직 충분히 정리되지 않았다. 적당한 협력과 경쟁에 약간의 쿨함을 첨가한 것일까 예측하고 있지만, 글을 쓰는 지금도 생각이 자꾸 바뀐다.
중학교 1학년 때, 터덜터덜 집에 오며 내가 그토록 오래 꿈꾸던 것들이 조화롭게 이루어지길 바란 적이 있다. "나도 언젠가는 경쟁에 의연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경쟁에 너무 많은 관계들을 잃어버렸고, 내 마음과 내 자신이 하염없이 멀어졌던 적이 있다. 중학교 때는 문제를 보았고, 고등학교 때는 피했으며, 마침내 대학교 때 문제를 풀 단서를 찾았다. 그렇게 매번 고민했던 아이는 커서 드디어 경쟁을 똑바로 마주한다. 만약 내가 터덜터덜 집에 돌아오던 때의 나에게 말을 할 수 있다면,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해주고 싶다. "경쟁은 경쟁이야. 그러니 먹히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 널 키울 게임이니깐" 이제는 경쟁이 내 삶을 헤쳐놓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경쟁에 끌려가지 않기를 바란다. 다만 날 성장시키는 하나의 원동력으로 활활 타오르기를 바란다.